경제가 어려워질 때, 또는 과거 어려웠던 때를 회상할 때 마다 언급되는 단어가 있는데요. 바로 과거 ‘IMF’ 외환위기 사태 입니다. 그렇다면 IMF 외환위기 사태란 무엇인지, 그리고 일어난 년도 및 원인, 그리고 외환 위기 극복 등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IMF 란?
IMF란 International Monetary Fund의 줄임말로, ‘국제통화기금’을 의미 합니다. 이는 1945년 브레튼우즈 체제가 출범하면서 세계은행과 함께 창설된 국제 기구로, 우리나라에서는 1997년 외환위기 (통칭 ‘IMF 사태’)를 계기로 많이 알려지게 되었죠. IMF는 선진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에서 일정량 기금 형태로 출자해 기금을 조성하게 되는데, 특정 국가에 달러가 부족할 경우에 달러를 융통해 주는 기능을 합니다. 주로 유동성의 위기로 갑자기 달러화 부족을 겪게 되는 국가나, 또는 방만한 재정 정책으로 외화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국가들이 IMF에 구제 금융을 요청하게 된다고 하죠. 그렇게 재정지원을 받게 되면 해당 국가의 신용도가 깎일 뿐 아니라 IMF의 지시에 따라서 해당 나라의 경제 구조 자체를 재편해야 한다고 합니다.
2. IMF 외환위기 사태, 한국만이 아니다?
국내에서는 1997년 외환위기로 인해 IMF가 크게 알려지게 되었는데요. ‘1997년 외환 위기’는 1997년부터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발생했던 외환 유동성 위기를 통칭하는 말 입니다. 한국에서는 단순하게 IMF, 외환위기 등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으나, 세계적으로는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로 불린다고 하죠. 해당 시기에 한국만 위기를 겪은 것이 아니라 아시아 전반에 파급효과를 일으켰기 때문인데요. 1997년 여름 태국부터 시작해서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의 동남아시아 국가부터 번진 외환위기는 같은 해 가을에 한국을 연쇄적으로 강타했고, 직접적인 경제 위기까지는 아니었던 중국과 일본도 적지 않은 영향을 받게 됩니다.
인도네시아와 태국이 타격을 가장 많이 받은 국가였으며, 한국은 단순 지표상으로 인도네시아와 태국보다는 덜했지만 또한 엄청난 위기를 겪었습니다. 그 외에도 홍콩, 북한, 라오스, 말레이시아, 필리핀, 몽골, 캄보디아, 마카오 등도 침체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또한 브루나이, 중국, 싱가포르, 대만, 베트남 또한 어려움을 겪기는 했으나 그나마 영향을 덜 받았다고 하죠. 그리고 당시에 아시아의 유일한 선진국이었던 일본에도 영향을 주었을 정도로 파급력이 상당한 큰 사건이었습니다. 참고로 한국은 1997년 11월 21일, 정부에서 국제통화기금 IMF의 구제 금융을 신청하기로 합니다.
3. IMF 외환위기 사태 원인
무엇보다 1997년 외환위기 사태 원인이 궁금해 지는데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1997년 외환위기 사태는 국내 뿐 아니라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발생한 외환 유동성 위기 입니다. 외환 위기 사태 발생 직전까지 문민정부의 금융정책으로 인해서 각 기업들은 무분별한 차입에 의존을 하면서 무분별한 과잉투자를 벌였고, 동시에 국외적으로는 태국의 고정환율제 포기로 인해서 환율을 이용한 외국 자본의 차익 실현으로 동남아시아 통화 위기를 발생하였고 동북아시아를 거쳐 세계 경제에 불안을 가져오게 됩니다. 이러한 경제적 불안은 한국 뿐 아니라 아시아 전체에 경제 위기를 불러오게 된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겉으로 드러난 이유는 그간 우리나라 금융기관과 기업에 자금을 대 주었던 다른 나라 금융 기관들이 와환, 즉 달러를 한꺼번에 되찾아 갔기 때문인데, 나라에 외환이 없어서 다른 나라에서 빌려온 돈을 제때 갚지 못해 위기가 찾아온 것이죠. 하지만 사실 우리나라 외환 위기는 그 이전 30여년간 급하게 성장해 온 경제 발전 과정에서 쌓인 문제점이 폭발하면서 일어난 것이라는 해석이 있는데요. 기업들의 국제 경쟁력 약화, 수출 감소, 기술 개발 소홀, 경제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제대로 알지 못한 정부 등 여러 곳에서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고 합니다.
당시 한국은행에 있던 외환은 다 떨어지면서 나라의 경제가 파산하게 되었고, 수많은 기업과 금융기관이 제 기능을 못하고 문을 닫았고, 지장을 잃은 실업자가 쏟아져 나오면서 가정 경제는 큰 어려움에 빠지게 됩니다.
4. IMF 외환위기 사태 당시 달러 환율

1997 년 외환위기 당시 원/달러 환율은 1900원대까지 치솟았으며, 사상 처음으로 달러당 2,000원대를 넘어서기도 했습니다. 이는 원/달러 환율이 단기간에 두 배이상 폭등한 수치인데, 환율이 높으니 수출을 하기 좋지 않았겠냐고 생각할수도 있으나, 기업들이 도산하던 시점이었기에 수출을 할 물건이 그리 많지 않았을 뿐 아니라 많은 외채로 인해서 많은 달러가 필요했던 상황이었습니다. 즉 팔 물건이 없는데 환율이 높아봐야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죠. 물론, 이러한 덕분에 경제가 차츰 회복되기 시작했을 때인 1998~1999년에는 수출경쟁력이 급상승하면서 수출액이 반등할 수 있었으나 이는 기저 효과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5. IMF 외환위기 극복
대한민국 국민들은 정부와 함께 이러한 위기를 이겨 내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는데요. 금 모으기 운동 뿐 아니라 아나바다 운동 (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기)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또한 기업들은 불필요한 부분에서 경비를 줄이고, 해외에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 합니다. 그리고 노동자와 기업가가 서로 양보하고 협동하면서 기업을 발전시킵니다. 정부는 일자리를 만들고 나라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여러 제도를 정비하게 되죠. 그러한 노력의 결과, 우리나라는 2001년에 IMF에서 빌린 자금을 모두 갚게 됩니다.